달의 화신化神으로
전통傳統(역사적 형성, 축적되어 그 계통을 이어가는 것)이 사라지고 있는 핵가족화 시대에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마저 다른 나라의 문화로 도색되어 우리 것처럼 얘기 되고 있는 시대에 과연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것이 왜 필요한가를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하게 인식하며 살아야 하겠다. 뿌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뿌리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사물이 나무 하나부터 근본이 있어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데 하물며 사람이란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면서 그 원초적 뿌리가 없겠는가. 뿌리 없는 사람은 언제나 겉돌며 뿌리를 잊고 사는 국민은 불행를 자초한다. 왜 그토록 뿌리가 중요한가, 그것은 그 뿌리가 개인을, 사회를, 국가를 지탱해 주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뿌리는 조상이요, 사회 구성원의 뿌리는 개개인의 굳건한 결속력이요, 국가의 뿌리는 주체적인 역사관이다.
그 가치관이 상실된 민족은 불행한 민족이요, 언제든지 외적인 침략에 의하여, 종살이 할 수밖에 없는 민족이 된다. 지금 우리는 공공기관이고, 개별 기관이고, 대기업 등 많은 국가를 운영해 가는 조직의 반 이상이 외국 금융에 의하여 경영되어 지고 있는 것이 현 실상이다. 은행, 재벌 기업, 중소기업 등 ..., 외국의 자본이 반 이상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형태의 지배구조가(지분구조)되어 버린 반식민지 상태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의 것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관 회복은 절실하게 요구 되는 바이며 그것을 본인의 자서전적 글말을 통해 천신당의 당주 이순애 선생은 보여주고 있다. 가까이에서 바라다보면 천상 자식들의 어머니 한 남자의 여인이다. 그러나 인생 파노라마의 굴곡을 듣노라면 또 다른 이면에서 쏟아나는 힘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질곡의 아픔 속에서 ‘승화’된 내면에서 발산되는 뚝심적 의지와 에너지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천신에 대한 가치관에서 들어난다. 그는 천존의 가치관에 의해 천존의 힘을 얻어 일월성신인 ‘달의 화신’으로 강신무(강신降神)가 되어 우리 민족의 하늘 숭배 사상인 천신사상의 맥락을 이어가는 그만의 톡톡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가 행하는 천신제, 산신제, 선황굿, 칠성굿, 내림굿, 진오귀 굿, 용왕제 등에서 볼 수가 있다.
천신사상의 정의
천신사상은 ‘우리가 우리의 하늘을 사랑한다는 우리 민족의 하늘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신관이며 우리의 전통적 사상 이다’고 천신당 당주 이순애 선생은 말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우리 민족의 '하늘님'이 있는데도 가당찮은 목소리로 외래의 하느님을 우리의 하나님인양 서슴지 않은 발언들을 일삼아 왔다. 우리민족의 하늘에 대한 사상은 단군에 대한 건국 이야기 천신(天神)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기를 원해 웅녀 사이에 단군(人)이 태어나 우리의 시조가 된 이야기, 즉 환웅과 웅녀의 결합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대한 사상과 또한 하늘에 제사를 지네고 풍요를 기원했던 의식은 우리의 고대사회 제천의식祭天儀式(하늘에 제사지내고 풍요를 비는 의식)에서도 나타났으며.부여(영고), 동예(무천), 고구려(동맹), 고려(팔관회), 조선(세조 때 환구단 설치) 등에서 우리의 조상이 하늘을 숭배하며 제사의식을 치르고 하늘의 영험한 신령을 중시하며 공경하여 왔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천신사상이 도외시 된 것은 많은 외래 종교의 여파도 있지만, 외래의 종교에 대한 맹신적 신관도 한 몫을 했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기 뿌리를 망각한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위 때문’ 이었다. 그들은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우리 것이라 주장하여 우리의 문화를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따르게 하여 정신을 억압 피폐하게 하며, 사회의 혼란을 야기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에게는 분명한 우리의 하나님인 '하늘님'이 있어 왔다. 그 하나님을 모르고 무조건 외래적 '신'을 신격화 시키는 '언어도단'의 행위를 자행한 것은 전통적인 확고한 믿음으로의 역사관의 부재였다. 또한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과거 열광의 제국주의자들이 외래적 종교를 우리문화 말살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것도 간과 할 수 없다.
마치 외래종교의 하나님이 온 우주의 하나님이며 창조주로 퇴색시켜버리고 우리의 고유 전통적인 정신마저 '왜색화' 되어 버린 것은 문화적 손실이며, 문화적인 큰 재난이요, 불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전통의 포기이며 언제라도 '힘'앞에서는 노예'가 되는 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며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저항의 의지마저 눌러버려 왜색의 하나님만 찾게 만드는 기계적인 사람으로 전환 시켜 버렸다. 이러한 때 이제라도 우리의 역사 속에 살아있는 우리의 신관을 회복하고 우리의 조상과 민족도 신앙시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지하게 그래서 우리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살려 나가야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굿과 노래와 신명을 통하여 보여주며 제자들의 내림굿의 복합적인 장면을 통해 꾸준하게 이순애 선생은 현장에서 우리의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이 우리의 천신사상(하늘에 있는 신을 숭배하는 사상적 견해)은 하늘을 우러러 하늘을 숭상하고, 하늘의 절대적인 최고의 신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 사상이며, 하늘에 있는 영험한 신령이 초자연적 힘을 지니고 있기에 우주의 인간과 자연물도 창조하였다고 본다. 그러기에 천신(天神)이란 하늘에 있는 우리의 신(神)이며 하늘의 신령(神靈)이다.
한민족의 시조인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복되게 한다)의 단군의 탄생도 천신인 환인의 강림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그와 같은 것이다. 물론 하늘[天]에 대한 인식은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유의 원형으로서 숭배되어 왔다. 우리 민족 또한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 중 하나가 하늘을 지고신(至高神)의 존재로 의식했다. '단군신화(檀君神話)'의 환인(桓因)은 '하늘' 또는 '하느님'이라는 우리말의 음역(音譯)이며, 환인의 아들로서 태백산에 강림한 환웅(桓雄)도'하늘'이라는 발음에 서 그러한 일면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건국 의 시조로 공동체의 수장이 된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아니면 하늘의 자손이라는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천신의 현현(顯現) 내지 하강은 고대인의 신앙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같은 믿음에서 나온 숭배는 제의祭儀(제사 의식)를 통하여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었다.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나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삼한(三韓)의 기풍제(祈豊祭)와 추수감사제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이러하듯 천신사상은 우리의 역사적인 뿌리가 되어 종교적인 모태가 되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우리의 뿌리를 외세
에 의하여 저만치 밀림으로 유폐시켜 버리는 국가에 대한, 사회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오만방자한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천신사상의 맥을 이어가는 천신당의 주인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죽음 문턱의 극한상황에서 강신무(강신降神)가 된 이순애 천신당의 당주는 천존天尊에 의한 일월성신日月星辰(해와 달과 별의 총칭)의 축원에 의하여 ‘달(月)의 여신’의 신격이 주어져 몸으로 실천하며 이 시대의 천신사상의 명맥을 이어가는 천신과 인간을 연결하며 가교 역할을 하는 무속인의 한 사람이다.
천신사상에서 천신사상에 대한 '하늘님' (우리의 하나님)이해는 두 가지로 말하는데, 신만신千信萬信으로 인간이 신을 믿는 것은 천 가지 만 가지의 형태이며, 인간은 자신의 습성에 따라 신을 섬기는 모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신의 능력인데 신은 천형만형千形萬形으로 신의 능력은 천 가지 만 가지의 모습으로 출현하여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하늘에 대한 신성함과 하늘님에 대한 분명한 의식은 우리만의 주체적인 철학이다. 우리의 것이 좋다고 하면서 왜색화 되어가는 이때 분명한 우리의 것을 찾고 확고하게 우리의 뿌리 위에 옥토를 가꾸어 우리의 뿌리내림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천신과 인간의 중도자로서 역할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천신당이 있기에 아직도 우리의 전통이 맥락이 살아 숨쉬고 있다함은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여기며 천신당의 주인이자 ‘참 만신인’ 이순애 선생의 계속되는 행보에 찬사를 보낸다.
*필자|김남열(시인,평론가)
달의 빛을 보았는가
강가에 어두움이 드리울 때
우리에게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
삶의 길목에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여정의 길을 가는
나그네의 영혼을
불 밝혀주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속삭이듯
이웃이 되는 달의 빛
그 신령의 영험함을
그대는 아는가
<이순애 선생의 신령의 불빛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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